입으로그리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선생님 선생님 그리기에서 선생님은 그리는 사람이 스스로 고민을 끌어내고 풀어가는 데 있어 교감하는 역할이다. 새로운 무엇이 있어서 그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비슷한 고민의 경험을 먼저 했다면 조금 더 빠른 길을 제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는 사람에게 맞아떨어졌을 경우에만 그렇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고민과 답은 스스로 찾는 거다. 처음 학원에서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을 무렵, 한 강사 선생님이 오셔서 "비켜봐~!", 하며 내 자리를 차지하고는 그때까지 내가 그리고 있던 것을 전부 지워버리고 다시 그리면서 "이렇게 그리면 안 돼~! 이렇게 그리는 거야~!" 그러고는 가버렸다. ... 한참을 앉아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고통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그리면 안 돼! .. 스스로 묻고 답할 힘 스스로 묻고 답할 힘 그 힘이 생겼다면 혼자 달려가기 시작한 거다. 신나겠지? ㅎㅎㅎ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깨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참 그리다가 문득 드는 생각 하나. 난 그리고 있는 건가? 아니면,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나? 난 손으로 열심히 수다를 떤다. 습작과 고민 습작과 고민 일반적으로는 더 많이 그려본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게 그려본 사람보다 잘 그린다. 동시에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왜일까? 물론 타고난 것도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습작의 양과 고민의 양이 누구나 똑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은 편안하게 잠을 잤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고 가정해보자. 둘 다 똑같은 시간을 살았다고 할 수 있나? 같은 시간 동안 한 사람은 심장이 60번, 또 다른 한 사람은 120번 뛰었다면 심장이 120번 뛴 사람이 더 많이 살았다고 해야 맞지 않나? 사람은 결국 심장이 뛰고 안 뛰고에 따라 삶과 죽음 - 시작과 끝이 나뉜다고 볼 때 각 개인의 시간은 각자의 심장박동에 달려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사람의 나이를 .. 스타일 스타일 결국, 과정의 스타일 - 그 과정 과정에서 던진 질문들의 스타일이고, 그 질문들에 답한 스타일이다. 과정마다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을 제대로 빠짐없이 했느냐가 최종 결과물의 스타일보다 우선하지 않나? 난 시험장에서 태어나서 처음 보는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 틀림없는 사실은 결과가 분명히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대략 70~80% 정도 그려진 다른 사람의 그림을 얻어라. 그리고 나머지 20%~30%를 채워서 완성해보자. 원래 얻었을 때와 비교해서 완성된 그림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행복 행복 물론 결과물에서도 행복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과정에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과정들 하나하나의 발전과 그것들이 모인 과정 전체의 발전이 결과물로 나타난다. 잘 그리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정말 재미있다는 걸 느껴야-알아야 할 것이다. 하려는 것이 다른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는 게 가장 먼저 할 일이 아닐까? ‘공부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지만 그게 얼마나 재미나는지 알려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해라~’는 소리를 참 쉽게 한다. 왜냐하면, 그 소리를 쉽게 들었었던 경험 때문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리는 자신도 모른다. 받아들이자. 원래 그렇다.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방향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정해놓은 이야기를 지루하게 매번 똑같이 반복하는 게 아니라서, 처한 시간과 환경에 더불어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감정이나 생각이 흐르는 대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더 재미있지 않은가? 난 궁금해 죽겠다. ㅎㅎ 토마토 토마토 어느 날 우연히, 나는 '토마토~!'를 외치는 어느 할아버지의 소리를 따르고 있었다. 정갈한 디지털의 무심히 반복되는 '토마토~!'가 아닌, 온몸에서 목청으로 울리는 순수 아날로그. 소름이 쫙 돋고, 찡-한... 토마토를 가득 싣고 저렇게 온종일 외치며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외치는 소리가 매번 실패로 돌아오는 중에도 할아버지의 의지는 멈추지 않는다. '토마토'만 팔러 다니시는 게 아닌가 보다. 결과가 매번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결과에 힘 빠지지 말자.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그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자기 의지만큼 스스로를 만드는 게 아닐까? 내 의지는 얼마만큼 강한가? 그래도 고통스러운가? 그래도 고통스러운가? 처음부터 끝맺음까지의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갖고 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성의 마지막 순간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면 잊어버리자. 스스로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지금 당장 하는, 해야 하는 이야기-과정에 집중하자. 잊지 말자. 내가 항상 갖고 놀아야 할 것은 손을 놓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거기까지의 과정들이다. 각 과정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아보자. 각 과정마다 갖고 있는 가치를 무시하지 말자. 그 가치들이 모여야만 완성된 결과물의 가치가 생긴다. 착각하지 말자.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연속이다. 당장 당장 밥 먹고 하지 말고 하다가 밥 먹어라. 뭐가 그리 다르고 차이가 있을까 싶겠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자세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마음을 다스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시간이 자꾸 흘러갈수록 '시작이 반이다'는 말이 크게 다가온다. 사실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자세에 문제는 없는가? 나는 내 마음을 얼마나 자유롭게 잘 다루는가? 음악 음악 근거 없는 이야기를 또 하나 해볼까? 난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못 본다. 조용해야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온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음악이 없으면 안 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버릇을 들였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젠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잘 살펴보자. 빠른 박자와 느린 박자의 음악을 들으며 그릴 때가 같은가? 즐거운 음악과 슬픈 음악은? 이전 1 2 3 4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