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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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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이성 감성과 이성 근거 없는 이야기를 또 하나 해 볼까? 감성과 이성이 있다. 둘 중 하나로만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내가 그리는 과정 전체를 돌이켜 보면 그게 이성이 되었든 감성이 되었든 세세한 과정들의 중간중간 수없이 내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숨길 수 없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내가 없어지기도 한다. 제발 미쳤다고는 하지 마시길... 틀림없는 사실은 그리는 도중에 내가 있고 없고가 조화로울수록 결과가 훨씬 좋았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살 것인가... 내 의지대로 살 것인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흐르는 마음을 의지로 조절하는 시대가 아닐까? 뜨겁게? 차갑게?
만져보자 만져보자 뜻대로 이야기되지 않는가? 직접 만져보자. 눈으로 느껴보고, 손으로 느껴보자. 손으로 보는 것도 보는 것이다. 대상을 좀 더 알 수 있다. 눈으로, 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먹어도 보자.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주어진 시간 대부분을 먹고 마시는 데 소비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냥 먹고 마시며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내 주변 아주 잘 그리는 사람들이 주어진 대상의 관련 자료들을 찾아서 읽어가며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그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모양이다. ^^
절실함 절실함 절실함의 있고 없고, 또는 그 정도에 따라 내 것이 되는 깊이가 다르다. 짜릿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지나쳐버리게도 한다. 감동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얼마나 충격적(shocking)인가? 흔히 무술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어떤 연유(緣由)로 무공을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는다. 처음 몇 번이고 쫓겨난 다음 겨우 스승에게 배울 수 있게 되지만 오랫동안 매일 빗자루를 들고 마당만 쓸게 된다. 결과론적으로 정작 스승이 나중에 무공을 가르쳐주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스승은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마당만 쓸게 했을까?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세상엔 가벼운 것도 있고 무거운 것도 있고 그사이에 여러 가지 무게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넌 모두 다 너무 ..
먼저 먼저 맛있는 음식은 먼저 입을 벌려야만 맛볼 수 있다. 혀로 맛보는 것만 그럴듯한 가치 있는 고민이 아니다. 항상 먼저 입을 벌려야 함도 중요하다. 틀림없이 해주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철저해지자. 내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틀림없이 해줘야 하는 것들부터 찬찬히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틀림없이 해줘야 하는 -항상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 미리 단정 지어버리거나 지나친 건 없는지...
손 놓지 말자 손 놓지 말자 슬럼프,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저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기어코 한 발짝만 떨어져서 생각해보자. 이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벗어나겠다는 것인가? 무엇인지 알아야 어떻게든 해볼 것이 아닌가? 벗어나는 것은 그 이후다. 실수. 누구나 한다. 사람이라 어떤 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도 있다. 더 주의한다거나 최소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도 실수를 통해 얻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실수했을 때 대처하는 것을 배우는데 좀 더 중심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슬럼프’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실수’도 생각났다.
슬럼프 슬럼프 치열하게 벗어나는 순간 한 단계 도약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갖고 놀자. 아주 치열하게.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는 기존의 갖고 있던 수준보다 오히려 못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은 한 단계 높은 벽에 맞닿아 있어서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것뿐이다. 당연히! 이겨낼 것이다.
부자 부자 언제부터더라? 그리면서 떠안게 되는 많은 고민이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막막함에 비하면 정말 날아갈 것 같지 않은가? 최소한 그 고민의 숫자와 깊이가 다행스럽지 않은가? 고민이 고민을 부르고 생각은 꼬리를 물어서 다행이다. 많은 문제와 혼란스러움은 나쁜 것인가? 변화의 가능성, 발전 가능성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것들이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재미있게 가능성을 실험하자.
고통스러운가? 고통스러운가? 그림 그리는 게 재미없는가? 고통스러운가? 이유는 하나다. 자기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가끔 누군가로부터 지나가는 말로 재미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괜한 자존심에, 한편으로 귀찮은 마음에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해버리고 무시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화가 난다. 당장 나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눈과 거슬리지 않을 만큼의 숨쉬기로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는데 그것을 흐트러뜨림과 동시에 자존심 건드리는 질문까지 감당하기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별 의미 없이 함부로 재미있느냐는 질문은 하지 말자. 알고 있지 않은가? 재미없다. ㅎㅎㅎ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나 덧붙여 볼까? 내 안에 무엇을 집어넣으려면 스스로가 딱딱해져야 하고, ..
좋은 그림 좋은 그림 잘 그린 그림과 좋은 그림의 차이는 무엇일까? 누구나 잘 그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누구나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처음 그리기를 시작할 무렵에는 잘 그리는 데에만 마냥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이상한 것은 잘 그릴 수 있게 되는 것만큼 좋은 그림에 대한 마음이 커진다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봤더라? 피카소가 말했다고 한다. ‘난 50년을 그려서야 겨우 아이처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잘 그린 그림을 말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리지 않기 그리지 않기 그리지 않아야 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맞닥뜨렸는가? 좀 덜 그리거나, 아예 그리지 않거나. 그리기가 긋기와 지우기이듯 그리기와 그리지 않기 둘 다 그리기다. 그리는 것이나 그리지 않는 것이나 같다. 다만 그리는 것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익숙하고 그리지 않는 것으로 접근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색하게 느껴질 뿐이다. 혹시, 잠드는 게 어색한가? 난 너무 익숙해서 자면서 꿈도 꾼다. ^^ 그리지 않는 게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모두 그려야 한다. 다 그리면서도 그리지 않은 것처럼 할 수도 있다. 흐- 비몽사몽(非夢似夢) 할 때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