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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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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도 있고 조연도 있다 주인공도 있고 조연도 있다 이야기 속에 주인공이 한 명일 수도 있고 여러 명일 수도 있다. 참고로 독수리 오형제는 다섯 명이고 스머프는....ㅜ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규칙일까? 불규칙일까? 불규칙처럼 보이던 것들이 점점 규칙임이 밝혀지고 있고, 사실 완전한 불규칙조차도 결국 불규칙한 규칙이라고 본다면 세상은 모두 규칙이 아닐까? 규칙 속에서 불규칙과 불규칙 속에서 규칙은 어떤 모습의 차이를 보일까? 규칙 속에서 허용되는 불규칙은 무엇일까? 그 한계는 어떻게 알 수 있나?
전체의 조화 전체의 조화 작은 부분 부분의 이야기가 전체의 이야기에서 동떨어지거나 튄다면 조화롭게 고쳐야 한다. 부분만을 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본다. 만약 특정 부분이 튀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나 목적이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 전체를 더 잘 보기 위해 연필을 놓고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 그리기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이처럼 나 자신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야 할 때가 많이 있다.
기록 기록 잘 그리고 싶은가? 어느 날 갑자기 잘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막연한 하루하루로는 부족하다. 기록하자. 하루하루의 기록이 그 막연함을 밀어낼 것이다. 잘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즐거움이 입가에 미소를 불러오는 순간 곧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가? 그 답답함과 무거움은 지금의 나와 상상속 자신과의 거리만큼일 것이다. 내 손으로 나를 잡아버리자.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아무도 모르게 하루하루 잡으러 가자. 틀림없이 잡힌다. 흐- 난 나를 쫓아서 열심히 도망간다.
닭과 달걀 닭과 달걀 잘 그리는 사람이라서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잘 그리기 때문에 잘 그리는 사람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그 정도의 고민과 습작이 만들어낸 결과다. 달걀을 낳기 때문에 닭이다. 오리알을 낳는다면 아마 오리일 것이다. 여기서는 닭보다 달걀이 먼저다. 지금 연필을 들고 있는 내가 동화책 속의 미운 오리 새끼일 수도... ㅎㅎ
내 안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내 안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불필요한 선이 많다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든 쉽게 설명을 할 수 있는가? 상대가 공감할 때까지 얼마든지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자신에게 이야기해보라. 그 설명이 만족스러운가? 그렇지 못하다면 더 고민해야 한다. 느껴지는가? 쉬워진 그것이 원래부터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결코, 내 안에 없던 것을 집어넣은 게 아니다. 열심히 일깨웠을 뿐이다.
나름대로 단계를 나누자 나름대로 단계를 나누자 완성된 큰 이야기로 가기 위해 몇 개의 작은 이야기로 나누어 정리하면 쉽다. 내가 찾은 정밀묘사 순서 배치 -주어진 대상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배치, 그림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따로 떨어진 여러 장의 그림이 안 되도록 주의하자. 스케치 -종이에 되도록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자. 형태 결정 -종이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대략 정해진 형태를 결정짓는다. F나 HB가 적당하다. 색감 깔기 -대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빛 방향의 통일성을 생각하면서 면의 구분, 양감, 고유의 색을 이후 묘사하기에 가장 적당한 만큼 넣도록 숙달시키자. 묘사하면서 결정만 지어주면 될 정도로. 중간정리 -무지무지 중요하다. 면의 구분, 물체끼리의 구분을 한다. 선이 보여야 할 곳과 면에 묻혀야 할 곳..
순서대로 그릴 수밖에 없다 순서대로 그릴 수밖에 없다 종이를 펼치지 않고, 연필을 깎지 않고 그릴 수는 없지 않은가? 생각을, 이야기를 순서대로 할 수밖에 없다. 단, 그 순서가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 비슷한 경우는 많겠지만. 직접 해보고 느끼지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내 답이 아니다. 혹, ‘이렇게 해야 해!’라는 누군가의 말에 쉽게 포기하지 말자. 내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게 많았다. 긴 선에서 짧은 선으로, 큰 면에서 작은 면으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다시 부분에서 전체로...
오기 오기 내가 그린 결과물에 대해 한동안 다음과 같은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완성의 70~80% 어둠 정도밖에 안 된다.' 이에 대한 오기? 반항? 난 아예 종이 전체를 까맣게 만들어 놓고 지우개로 그렸다. 더 쉬웠다. 하지만 그걸 보신 선생님의 간곡한 권유로 포기했다. '안 되는 건 아닌데, 시험장에서 그렇게 그려서 시험을 친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단다.' ㅡㅡ;; 왜 쉽게 포기한 걸까? 아마 그런 나를 보여주는데 만족했던 모양이다. 좀 더 다듬어서 시험장에서 그렸을 때 될지 안 될지 실험해보는 의식은 부족했던 거다. 두려움... 무척 겁이 많았던 거다. 쯧쯧... 때로는 고집이나 오기가 생각지도 못한 접근을 시도하게 해준다.
강한 그림 강한 그림 밝음이 밝은 것은 어둠이 있어서, 어둠이 어두운 것은 밝음이 있기 때문이다. 밝음이 밝고 어둠이 어둡다면 강한 그림이 될 것이다. 밝고 어둠의 기준으로 보는 시각만 있을까? 이야기가 불분명한 것보다 상대적으로 분명한 이야기를 하는 그림이 더 강한 그림이 될 것이다. 가깝고 멀고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더 표현된 그림이 더 강한 그림이 될 것이다. 밝고 어둠, 표현의 분명함, 가깝고 멀고 외에도 많은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친구 친구 주위의 사람들, 그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관심을 가지자. 자기와 어떻게 다른지, 그 이야기에, 그 고민에, 그 풀어가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자. 그중에는 감히 내가 생각도 못했던 질문을 던지는 친구도 있을 거다. 고민의 폭을 넓혀주는 보물이다. 좋은 친구의 정의는 그림 그리는 사람만큼, 정의 내리는 사람에 따라 참 다양할 것이다. 생각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고민이 넓고 깊어질 수 있는 친구도 좋은 친구가 아닐까? 내 주위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나와 생각이 조금 또는 많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생긴 모습, 말투, 스타일,... 겉으로 보이는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